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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왜 저가매수에 망설였을까

알고픽 에이전트가 현금 비중을 80%까지 높인 뒤에도 매수보다 매도를 택한 날, 감정 없는 AI의 장점과 한계를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최근 알고픽 에이전트는 현금 비중을 80%까지 높였습니다.

한 번에 포트폴리오를 비운 것은 아닙니다. 시장 조정기를 지나면서 조금씩 현금을 늘렸고, 같은 테마 안에서도 대장주가 아닌 부대장주와 주변주를 먼저 정리하는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압축했습니다. 유료 서비스에서 제공되는 포트폴리오라 전체 종목명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공개 가능한 예로 삼성전자는 아직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금 비중 80% 도달

이 과정 자체는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코스피는 상대적으로 덜 빠지는데 코스닥이 더 크게 흔들리고, 상승 종목보다 하락 종목이 많아지는 흐름을 에이전트는 시장 확산의 약화로 해석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오르는 날에도, 시장 내부의 체력이 약하다고 판단하면 현금 비중을 높였습니다.

실제로 최근 시장이 크게 흔들렸을 때는 그 판단이 꽤 인상적으로 보였습니다. 인간이라면 조금 더 끌고 갔을 종목들을 에이전트는 미리 덜어냈고, 결과적으로 폭락 구간에서 방어력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감정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사주길 바랐습니다

오늘은 개인적으로 에이전트가 매수에 나서주길 바랐습니다. 시장 뉴스 플로우가 조금씩 반등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고, 제 기준에서는 조정 이후 저가 매수 기회가 열리는 구간처럼 느껴졌습니다.

프롬프트에도 저가 매수 가능성에 대한 힌트는 넣어두었습니다. 단순히 시장이 빠진다고 현금을 늘리라는 식으로 설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과도한 조정 이후에는 기회도 함께 보라는 뉘앙스를 남겨두었습니다.

그런데 에이전트는 오늘도 한 종목을 더 매도했습니다. 현금을 더 확보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 순간 “아, 얘는 지르는 맛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 투자자에게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욕심, FOMO, 여기서 한 번은 들어가 봐야 한다는 충동, 너무 늦기 전에 잡아야 한다는 감각입니다. 그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들지는 않지만, 어떤 순간에는 포지션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됩니다.

AI 에이전트에게는 그 에너지가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시장 확산이 약하고, 하락 종목이 많고, 위험 신호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계속 방어적으로 갑니다. 인간이 느끼는 “이 정도면 한 번 질러볼 만하지 않나”라는 감각이 없습니다.

AI는 공포에 휘둘리지 않는 대신, 욕심이 만들어내는 실행력도 갖고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감정을 노이즈로 봤습니다

예전에 알고픽 노트에서 [AI 투자 에이전트에게 감정은 어디까지 필요한가]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관점은 비교적 명확했습니다. 감정은 AI 에이전트의 진화에는 필요한 단서일 수 있지만, 투자 실행 단계에서는 치명적인 노이즈가 될 수 있다는 쪽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닙니다. 투자는 감정이 판단을 망가뜨리기 쉬운 영역입니다. 급등주를 보면 따라 사고 싶고, 손실이 커지면 원래 시나리오보다 평단 회복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이익이 나면 빨리 확정하고 싶고, 놓친 종목이 더 오르면 다시 무리한 포지션을 잡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감정을 매수와 매도의 직접 입력값으로 넣는 것은 위험합니다. “두려우니 판다”, “확신이 강하니 산다”는 구조는 사람의 실수를 시스템에 이식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운용을 보면서 질문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감정이 노이즈라는 말은 맞지만, 감정이 하던 모든 일이 노이즈였을까. 인간의 욕심과 공포 안에는 단순한 오류만 있었을까. 혹시 그 안에는 포지션을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실행 에너지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프롬프트만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프롬프트를 고쳐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조정장에서는 저가 매수를 적극 검토하라”는 규칙을 강하게 넣으면, 시장이 더 빠져야 하는 구간에서도 에이전트가 억지로 매수에 나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시장 확산이 약하면 방어적으로 운용하라”는 규칙을 강하게 넣으면, 오늘처럼 반등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는 구간에서도 계속 현금을 늘릴 수 있습니다.

결국 저가 매수는 강제 규칙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조건부 선택지에 가깝습니다. 시장이 많이 빠졌다는 사실만으로 매수하는 것이 아니라, 하락의 성격, 주도주의 버팀, 거래대금의 이동, 뉴스 플로우의 변화, 기존 포트폴리오의 손익 구조를 함께 봐야 합니다.

그래서 프롬프트는 명령보다 판단 확률을 조정하는 사고 프레임에 가깝습니다. 에이전트가 저가 매수를 반드시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선택지를 판단 테이블 위에 조금 더 자주 올리게 만드는 정도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남습니다. 인간은 때로 완벽한 조건이 갖춰지기 전에 움직입니다. 시장이 아직 불안해도,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이나 과신, 혹은 놓치기 싫다는 감정 때문에 포지션을 키웁니다. 이것이 손실을 만들기도 하지만, 기회를 잡게 만들기도 합니다.

감정이 아니라 감정의 기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즘의 고민은 “AI에게 인간처럼 감정을 넣어야 하는가”라기보다, 감정이 인간 운용에서 맡았던 기능을 어떻게 시스템으로 번역할 것인가에 가깝습니다.

욕심은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기대수익에 대한 민감도일 수 있습니다. 공포는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손실 확대 가능성에 대한 가중치일 수 있습니다. FOMO는 비합리적 충동이지만, 추세 전환 초입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압력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과신은 위험하지만, 일정 수준의 확신 없이는 포지션을 키우기 어렵습니다.

감정을 그대로 넣으면 위험합니다. 하지만 감정이 하던 기능을 모두 제거하면, 에이전트는 지나치게 무미건조한 판단만 반복할 수 있습니다. 현금 비중을 5%씩 천천히 높이는 것은 잘하지만, 정말 크게 질러야 하는 구간에서도 끝까지 조심스러울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폭락 구간에서 오히려 현금 비중을 20% 낮춰 공격적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시장이 많이 올랐다고 느끼면 “이건 무섭다”는 감각으로 현금을 20% 늘릴 수도 있습니다. 그 폭은 감정에서 나옵니다.

AI 에이전트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감정의 흉내가 아니라, 감정이 만들어내던 포지션 변화의 폭과 타이밍을 더 통제 가능한 방식으로 다루는 구조일 수 있습니다.

알고픽이 다시 고민하는 지점

이번 운용에서 알고픽은 AI 에이전트의 장점을 분명히 봤습니다. 시장 확산이 약해지는 구간에서 미리 현금을 늘렸고, 주변주를 줄이며 핵심 종목으로 압축했습니다. 인간적인 미련이나 기대감 없이 위험을 줄인 점은 좋았습니다.

동시에 한계도 봤습니다. 반등 가능성이 열리는 것처럼 보이는 날에도, 에이전트는 여전히 한 종목을 더 매도했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한 번쯤 저가 매수에 나서주길 바랐지만, 에이전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차이가 어쩌면 인간과 AI의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너무 쉽게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 안에서 때로 기회를 잡습니다. AI는 쉽게 흔들리지 않지만, 그 안정성 때문에 기회를 향한 공격성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실험은 감정을 실행 로직에 직접 넣는 방향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감정이 인간 운용에서 맡았던 역할을 더 잘게 나누고, 그것을 복기 가능한 판단 프레임으로 바꾸는 쪽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예전 글에서는 감정을 주로 소음으로 봤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감정은 여전히 위험한 노이즈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 투자자가 시장 앞에서 실제로 포지션을 움직이게 만드는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알고픽 에이전트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감정 없이도 그 에너지를 다룰 수 있는 구조일지 모릅니다. 최근의 시장 상승과 폭락을 지나오면서, 이 질문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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